■밀양 평밭마을 르포

낮 최고기온이 31℃까지 올라갔던 지난 22일 오후. 밀양시내에서 5km 떨어진 위양리 평밭마을 입구에는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운동을 하던 주민 할머니 한 분이 탈진해 실려 왔다. 다급히 구급차를 부르던 마을 주민 배수철 씨는 “국가가 도저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왜 개인 땅에 전기를 놓는다고 들어와서 죄 없는 주민들을 쓰러지게 하느냐”고 절규했다.


 


지난 20일, 8개월 동안 중단됐던 밀양 송전탑 공사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전력 수급 문제로 더 이상 공사를 지체할 수 없다’는 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재개됐다. 마을 주민과 한전 인력 간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여러 마을(단장면, 상동면, 부북면 위양리) 중 위양리 평밭마을에 위치한 127번 송전탑 건설 현장이 대치가 가장 격렬하다.

평밭마을 입구에서 3km 차를 타고 올라간 송전탑 건설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송전탑이 건설되고 있는 가파른 산길에는 온갖 쓰레기와 자재가 널부러져 있었고, 한전 인력과 마을 주민 간에는 고성이 오고 갔다. 한전 측과의 몸싸움 끝에 수십 미터나 건설 현장에서 끌려 내려온 한옥순(66) 할머니는 “휘발유를 가져와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내겠다”며 소리쳤다.

아침에는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노끈으로 건설 장비와 몸을 연결한 채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공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후 3시, 공사를 재개하려는 한전측 인력들이 건설 현장을 막고 있던 마을 주민들을 현장에서 끌어내며 충돌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상의를 벗고 저항하는 할머니들을 한전 인력들이 무력으로 끌어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평밭마을 주민 박정후(60) 씨는 “공사를 시작한다는 명분으로 마을주민들을 건설 현장에서 끌어내렸지만 결국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며 “애초에 공사를 시작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왜 굳이 마을 주민들에게 폭행을 가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상황이 악화된 것에 대해 경찰의 책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충돌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마을 주민들도 아래에서 가로막는 경찰 때문에 현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다른 마을 주민들이 끌려 내려오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녹색당 장영식 운영위원은 “경찰이 오늘의 충돌을 방조하고 도왔다”며 “심지어 상황을 확인하러 온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 측은 “ 한전 측 부지이기 때문에 공사를 재기하기 위한 약간의 충돌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 한전의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던 할머니가 탈진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평밭마을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은 어느덧 여덟 해를 넘겼다. 평밭마을은 수려한 경치로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다. 마을 주민들은 백숙집을 운영해 외부인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바로 위를 지나는 765kv의 송전탑을 승인한다는 정부의 결정이 난 후로 마을 주민들의 주업은 ‘투쟁’이 됐다. 평밭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여러 플래카드와 함께 ‘내 땅을 지키지 못한다면 목을 매고 죽겠다’며 나무에 목줄이 걸려 있다. 또한 길 양편의 나무들을 노끈으로 묶어 마을 진입로를 차단하고, 경운기⋅트랙터 등으로 장벽을 쳤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공사를 계속하는 한전 직원들보다도 송전탑 반대운동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더욱 무섭다. ‘님비 현상이다’, ‘보상금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송전탑이 뭐가 위험하다고 그러느냐’는 지적들이 여러 언론들을 통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밀양 주민들은‘ 보상이고 뭐고 필요없으니 제발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경로를 변경하면 다른마을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닌 송전선을 지중화 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22일 일어난 충돌은 공사가 재개된 이후 가장 정도가 심했다. 4명의 마을주민들이 몸싸움과 더운 날씨로 탈진해 다급히 병원으로 후송됐다. 전날 1명의 할머니가 실신해 실려 간 후 연이어 발생한 사상 사고다. 60대의 한 할머니는 지난해 1월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다가 분신한 이치우 씨를 예로 들며 “계속 되는 투쟁에 대부분의 주민들의 분노는 끝까지 차올랐다”며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이 생기면 어떡하나”고 걱정했다.

밀양의 다른 지역 주민들도 8년째 지속되는 투쟁에 안타까워했다. 밀양에서 20년째 택시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철 씨는 “전선이 뭐길래 주민들의 삶을 다 망쳐놓냐”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지만 그 평화롭던 주민들의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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