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 속을 벗어나 봐요”

<여행을 떠나요>의 가사 중 일부이다. 꽤 오래된 유행가임에도 노래 가사 속 화자의 모습과 유사한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연일 대중매체에서는 지친 마음을 위로하려고, 혹은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처럼 힐링 코드와 여행의 결합은 대중매체를 통해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캠핑의 인기 역시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복잡한 도시를 뒤로하고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언제부터 여행은 휴식을 의미하게 됐으며, 자연은 이러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된 것일까? 진정 우리는 도시에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을까?

 

▲ 자연에서 여가생활로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양에서 여행의 기원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올림픽 경기 참가와 온천요양 및 신전 참배 등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중세에는 주로 성지순례와 같은 종교여행이 성행했다. 황민호(숭실대 사학) 교수는“ 관광⋅여행의 양상이 사회·역사적인 현상을 반영하며 변화됐다”며“ 중세의 여행이득도와 신앙심 추구를 위한 고행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면, 근대에는 휴식, 위락 등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주를 이룬다”고 봤다.

우리나라도 근대 이전에는 주로 왕이나 관료 혹은 승려들이 공무를 수행하거나 종교적인 목적을 이유로 여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철의<관동별곡>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그러한 여행의 결과 나온 여행기였다. 근대 이전에 여행은 평생에 걸쳐 아주 드문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근대로 들어서며 여행은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를 가능하게한 것이 바로 철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철도는 1899년 개통한 경인선을 필두로 하여 대다수가 20세기 초에 완성됐다. 물론 이 시기에도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계층은 몇몇에 한정됐다. 하지만 철도가 놓이며 여행의 범위가 확장되고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축소되어, 이전보다 훨씬 여행하기가 쉬워졌다.

무엇보다 철도는 근대적인 사고관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표상 공간의 근대>에서 이효덕이 말하고 있듯이, 철도는 지역마다 가지고 있던 고유한 시공 구조를 균질적으로 변용시켰다. 특히 철도를 통해 연결된 지역들은 우리 국토의 경계를 실감케 했고, 이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상상하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철도의 탄생은 중심과 주변을 구획하는데에도 일조했다. 철도 대다수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기차를 탐으로써 중심으로서의 서울을 체감했다.

그러나 서울이 점점 과밀화될수록 사람들은 더 큰 피로를 느껴야 했다. 도시적 삶이 주는 피로를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시를 떠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휴식을 위하여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찾았으며, 이는 자연을 도시 바깥의 것, 도시와는 다른 성격의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과거에도물론 자연이 속세와 대조적인 공간으로 그려지는 일은 잦았다. 이때의 자연은 관념적인 의미에서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자연에서 도를 찾고자 했으며, 자연을 심성수양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어떤 의미에서 자연은‘ 기준’이자‘중심’이었으며, 언제나 삶과 연접되어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며 자연은 도시인의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고 가공되어 주변부로 배치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자연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특히 도시 근교의 자연은 잘 가꾸어지고 세련되게 포장되어 관광지로서 부각됐다. 도시 내부에 인공적으로 자연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근대공원의 시작으로, 남산공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의 자연은 바로근대에 출현한 소비적 공간으로서의 자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차이가 있다면 자연의 상품화가 더욱 교묘하게, 또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자연은 외따로 분리되어, 현대인의 여가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삶과 분리된 자연에서현대인이 얻는 만족은 늘 일시적일뿐이다. 일회성 소비의 대상으로 자연을 보는 시각은 결국 일회적인 힐링으로 이어진다. 여행을 갈 때마다 매번 힐링을 부르짖는 것이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과거 선조들은 자연을 분리된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 속에 살면서 안분지족을 느꼈다.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선조들의 태도가 아닐까? 이를 위해서는 도시 중심적 사고로 자연을 부속물로 생각하는 패러다임부터 철저하게 바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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