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사진 속 자신을 바라보며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사진 속의 자신이 가장 사실적인 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 속의 ‘나'에게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겉모습조차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은데 자기 내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어떨까? 인간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그 혼란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지 모를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놓쳐 헤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다. 그 혼란 속, 지쳐있는 이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 바로 김형경의 <사람풍경>이다.
 

프로이드와의 첫 만남은 대학에 갓 입학해 전공수업을 수강했을 때다. 충격에 가까운 당황스러움이랄까, '무의식에 지배받는 인간'이란 프로이드의 주장은 낯설음과 동시에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거부감이 잠시 떠오른 이유는 김형경의 <사람풍경>이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불쑥 튀어나오는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사람풍경>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이론서로 마주쳤던 프로이드가 차가운 꼬챙이로 필자를 꾹 찔렀다면, 여행 속 그녀는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며 따뜻한 손길로 필자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마주치는 대상의 내면과 작가의 진심어린 고백이 필자와 마주치는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을 통해 발견한 어둠과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헤매는 필자를, 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다. 필자는 그 따듯함에 내면의 공허함이 점차 채워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사람풍경>은 외국여행을 통해 만났던 대상들을 작가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이며 전해지는 감각과 감정들을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따뜻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이 책은 마주치는 대상들에게만 시선이 머무는 일반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수많은 여행지에서 그녀가 가장 많이 만난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녀는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과거를 통해서 현재의 자신과 마주한다. 우리가 놓치거나 회피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양한 풍경과 장소, 그리고 마주치는 인간들에게 그녀가 매우 깊이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상처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 나라의 문화와 그들이 살아나가는 방식들은 인간과 세상풍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해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되는 이유는 기대했던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의 감정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하고 휘둘리며 삶의 길에서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인간은 불행하게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하지 않으며, 사랑받길 원하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의식으로 통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부수고,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최소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마가 고대 유적으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무의식을 자원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다.
 

아직도 필자는 겁이 많고, 의존적이며, 나약하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자신이 더 이상 싫지만은 않다. 그 못나고 추한 모습들도 ‘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을 완전히 수용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추하고 못난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려운가? 우리 모두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는 내면세계를 벗어나자. 억압이나 회피의 방어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에 닿는 것, 그것이 본래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 그 탈출이 성공할 때 우리 삶에도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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