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논쟁이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이기론(理氣論) 논쟁이다. 두 학자의 학문적 근원인 주자학(성리학)에서 이(理)와 기(氣)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理)란 원리, 진리, 도덕규범으로 서양철학에서의 ‘이데아’와 유사한 개념이다. 기(氣)는 형이상학적(추상적)으로 풀이되는 이(理)와 다른 ‘현실적 존재’를 일컫는다. 중국의 현대철학자인 풍우란은 이(理)는 설계도, 기(氣)는 건축재료로 비유했다.
 
우리나라에서 이기론 논쟁은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에서 시작됐다. 이후 이황과 기대승을 지지한 이이의 논쟁을 넘어 이들을 대표하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졌다.

퇴계, 도덕을 이야기하다
 
퇴계학부산연구원 이원균 부원장은 “퇴계는 이(理)를 가장 중시했다”고 설명한다. 퇴계 사상의 중심은 이(理)에 대한 해석에 있다. 대표적으로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들 수 있다. 이(理)와 기(氣) 모두 발(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계가 이(理)의 능동적 작용인 이발(理發)을 인정한 것이다. 이발(理發)이란 이(理)가 존재하기만 해도 기(氣)의 작용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유권종(중앙대 철학) 교수는 “기(氣)

   
 
를 말로 보고 이(理)를 그 위에 탄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다”며 “말이 아무리 실제로 움직이는 실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말에 올라타고 방향을 정해야만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理)를 기(氣)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로 규정한 것 역시 퇴계가 이(理)를 중시했다는 근거다. 손오규(제주대 국어교육) 교수는 “퇴계는 이(理)와 기(氣)를 나누고 이(理)를 더 우위에 두었다”고 말했다. 퇴계는 이(理)를 반드시 지켜야할 선한 것으로 보고 기(氣)를 선함과 악함이 혼재된 것으로 봤다. 이(理)는 현실세계를 초월한 진리라는 것이다.
 
퇴계의 이론은 퇴계학이라는 학문이 돼 영남학파를 구성했다. 이는 후에 실사구시를 주장한 실학자 성호 이익을 배출해낸 학파이기도 하다. 도덕만을 중시하고 실천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반박하는 사례다. 즉 이(理)를 따르기 위해 기(氣)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한다는 것이다. 유권종 교수는 “퇴계의 가르침에는 성인이 되는 방법이 담겨있다”며 “퇴계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하고 수준높은 인격의 소유자들이 사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율곡, 균형과 조화를 중시한 학자

 
율곡은 이(理)와 기(氣)가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氣)가 있어야 이(理)가 있다는 것이다. 퇴계와 비교해서 기(氣)를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퇴계와 달리 율곡은 이발(理發)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기발(氣發)만 인정한다. 이것은 ‘이(理)가 기(氣)에 반영된다’는 율곡의 말에서
   
 
알 수 있다. 류태건(부경대 정치외교) 교수는 “이(理)와 기(氣)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우위 없이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理)와 기(氣)를 동등한 위치에 둔 것은 율곡이 관념적인 것만큼 현실적, 물질적인 것도 중시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선후기 실학의 시초를 율곡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기(氣)를 통해 이(理)를 실현할 수 있다는 율곡의 가르침이 실학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퇴계와는 달리 기(氣)를 ‘갈고 닦아야’할 존재가 아닌, 이(理)를 ‘실현’할 수 있는 긍정적 존재로 규정했다. 이동희(계명대 윤리) 교수는 “율곡은 이론과 실천의 병행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理)와 기(氣)를 정의하는 율곡의 이기지묘(理氣之妙)에서 ‘균형과 조화’를 볼 수 있다. 율곡은 두 가지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한 것이 옳은 것이라 주장했다. 이(理)가 없으면 기(氣)가 없고, 기(氣)가 없으면 이(理)도 없다는 것이다. 황의동(충남대 철학) 교수는 “이기지묘는 모든 존재를 존중한다”며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율곡의 가르침을 명심해야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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