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이라도 버거운 일은 버티기보다 쉬이 포기해버리는 사람이었다. 피아노 대회를 준비하면서 역량이 모자란다고 느꼈을 때 다녔던 학원을 단번에 그만뒀고, 그 밖에 조금만 힘들다 싶은 일은 금방 포기해 버리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힘들고 자신 없는 일은 피하고, 잘하고 재밌는 일만 골라서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문사에 들어오기 전,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신문사 일이 많이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늘 그렇듯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첫 기사부터 취재가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 취재요청을 하기가 겁이 나 한 시간을 넘게 서성거리기도 하고 전화취재를 하면서 발신음이 울리면 전화기를 들고는 벌벌 떨었다. 밤을 새우는 마감 날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스트레스와 함께 몰려오는 잠은 떨쳐내기 어려웠다. 스무 번째 생일과 함께 맞은 조판 날, ‘아직까지 안 하고 뭐 했냐’ 는 선배의 질타에 결국 눈물이 터졌다. 선배의 질타가 야속해서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상태에서 지금까지 포기해버렸던 많은 일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신문사에 남아있다. 기자라는 직업은 처음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기자는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쓰는 수필가가 아니라 확실한 ‘팩트’와 ‘취재’를 바탕으로 글을 구성해나가는 ‘사실 확인자’였다. 기자는 사실을 확인하고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기사를 풀어내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이제서야 내가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것이 성장의 증거라면 증거일까?
 
앞으로도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 넘기지 못할 것 같았던 고비들을 하나둘씩 넘기는 스스로를 보며 예전과는 달리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8개월 전과는 분명 다르다. 시행착오 속에 기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배웠고, 취재요령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게다가 내 옆에는 ‘혼자 끙끙대면 화낸다’고 말해주는 동기가 있고 많은 부족한 점을 감싸주는 선배가 있다. 생각해보면 신문사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행복했다. 이 기억들이 포기하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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