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를 걱정하는 교수들의 모임’이 총장실을 점거한 지 벌써 석 달이 가까워온다. 이번 총장실 점거는 부산대학교가 안고 있는 내부적인 위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위기는 총장의 총장직선제 폐지 학칙 개정에 의해 초래되었다. 많은 사람이 총장직선제의 폐지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만, 더 중요한 위기의 본질은 총장직선제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학내 민주주의가 짓밟혔으며 많은 사람들이 총장을 도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지금의 총장은 총장직선제를 수호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다. 그런 중대한 공약의 위반은 선거를 통하여 표출된 다수의 학내 구성원의 의사를 배신하는 것이며, 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 총장직선제의 존치가 교수들의 다수 의사라는 것은 지난 6월말에 있었던 교수 투표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총장은 이러한 투표 결과도 완전히 무시하였다. 실로 학내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총장은 무거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직선제 수호는 총장의 선거 공약이었다. 직선제의 존치 또는 폐지에 관한 교수 투표 과정에서 총장은, 교수들이 직선제의 존치를 선택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다시 한 번 약속하였다. 직선제폐지는 이 두 번의 약속을 모두 어긴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도덕적 행위의 기초에 속하는 일이다. 이처럼 약속을 어기는 총장은 도덕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총장과 그를 옹호하는 인사들은 부산대학교 애교론(愛校論)과 상황논리로 총장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부산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부산대학교를 사랑하고 부산대학교의 장래를 걱정한 나머지 고뇌에 찬 결단으로 총장직선제 폐지를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대학교 교수와 모든 구성원들은 우민(愚民)이 아니다. 총장 선거 당시에도, 또 6월 말의 교수 투표 당시에도 총장직선제를 고수하면 우리에게 어떤 불이익이 닥칠 수 있는지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직선제존치를 선택한 것은 상황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 아니다. 총장과 본부보직자들만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애교적으로 행동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총장직선제 존치의 선택을 한 모든 사람을 우민으로 여기는 것이다. 독재적 발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독선적 태도이다.
 
지금의 부산대학교의 내부적 위기는 학내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도덕성의 위기이다. ‘부산대를 걱정하는 교수들의 모임’의 행동은 이러한 위기로부터 부산대학교를 지키려는 힘겨운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부산대학교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 총장은 초심으로 돌아가서, 총장에 입후보 할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또는 역사의식을 갖춘 인문학 교수로 돌아가서, 현재의 총장직으로부터 한 걸음 성찰적인 거리를 두고, 부산대학교에 어떤 내부적 위기가 초래되었는지, 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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