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Genet. 성 주네. 사생아로 태어나 도둑이자 부랑자, 동성애자로 살았던 주네가 성자라니. 그런데 더욱 재밌는 점은 이 호칭을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 사르트르가 붙였다는 것이다. 물론 주네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르트르의 지갑까지 훔쳤지만.
  프랑스 극작가인 장 주네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통상적인 성적 취향을 버렸고 도둑질을 하며 사창가에서 살았다.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가 의도적으로 사회를 부정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본성이 본래 그러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떻게 됐던 간에 중요한 건 주네가 그들의 삶에 완전히 동화됐다는 점이다. 남창과 포주, 도둑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르트르는 주네를 성자라 불렀다. 주네는 자신의 지식과 사상을 말로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몸소 행동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사르트르가 주네를 높이 평가했던 건 행동하는 지식인이 순교자와 같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식인은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적극 해결해야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사회 기득권자라 볼 수 있는 지식인이 사회 소수자를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니, 가능하기는 할까. 이는 최고의 지성인 사르트르에게도 난제였을 것이다. 프랑스 명문 집안 출신인 사르트르가 거리의 부랑자 주네를 성자라고 부른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한 지식인의 고뇌는 1980년대 학생·노동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에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이어온 활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학생운동이 오늘날의 노동과 인권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운동의 주체였던 대학생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면서도 그 계층에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학생운동은 실패했다”
  지식인의 영향력은 세대를 걸쳐 계속된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오늘날 쌍용자동차의 비정규직 해고 문제, 용산참사,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치 등의 사건을 발생케 했고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에도 끝없이 생겨났다. 침묵하는 대학생이 그들이다. 최근 우리학교 철학과 사건도 오래전부터 계속된 문제였지만 그동안 대학생들은 침묵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교수의 과제 제출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이를 수용했다. ‘졸업을 해야 하기에’ ‘낮은 학점을 받을까봐’ 등의 이유에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소속된 집단도 비판하지 못하는 대학생 지식인이 사회 소수자에 무지한 것도 당연한 결과다.
  지식인들의 고민은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임무, 그리고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식인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 고민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고 결국은 지식인을 몰락으로 이끌고 있다.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한 오늘날 주네가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주네가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스스로가 지식인이라 생각하지 않아서는 아닐까. 오늘날 지식인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지식인이라는 허상의 기득권을 버리고 이제는 행동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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