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정문에는 시계탑이 있었다. 밑이 뻥 뚫린 주차장 입구 자리에 말이다. 누가 동의하고 진행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시계탑은 사라졌고,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없어졌고, 백화점이 생겼고, 학교 학생들이 백화점 눈치를 봐야 한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문화공간이었던 ‘부산대 앞 거리’, 이제 그 거리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면 ‘불법’이 된다. 이것 또한 누가 동의하고 진행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시계탑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이미 졸업할 시기가 됐을 것이다. 정문 앞 거리에 모여 마음껏 놀던 기억을 가진 학생들도 말이다. 수십 년간 많은 공연 동아리들이 정문 공연을 위해 1년을 준비하고 그 무대에 오르곤 했다. 때론 집회의 공간으로, 때론 문화적 공간으로 정문 앞 거리를 사용 했었다. 많은 이야기와 모습이 담겨있는 그 거리와 시계탑의 모습은 이제 없어졌다.
 
학생과 사회의 만남을 이어주는 ‘부산대학교 앞 거리’에서 마음껏 놀 수 있을 때가 좋았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서 개별적이고 닫힌 공간이 아닌 벽을 트고 만 날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춤추고 노래 할 수 있는 광장. 지금 우리는 그 광장을 잃어버렸다. 개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소비자들을 위해 그 거리에 서는 자들은 범법자가 된다.
 
자본은 자신의 정체를 희미한 안개 속으로 감추고 세계를 조정하고자 한다. 누가 이 거리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자를 범법자로 만드는가? 우리는 동의 하지도 않은 것에 목덜미 잡혀 내 삶을 돌아 볼 여유조차 허용치 않는 대학에서, 무엇을 위해 공부 하는가?
 
대학의 역할은 지식인을 양성하는 학문의 공간이었다. 또한 민중을 통제하고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책임을 가짐과 동시에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을 사회에 요구 해 왔다. 또한 저항 문화로써의 대학문화가 청년문화를 주도하면서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게 했다. 숨 막히는 군부 독재의 시기에 유일한 해방구와 대안 공간의 역할을 대학이 수행했다. 하지만 군부독재의 시기를 넘어 형식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 세력에서 군부 세력으로의 권력 세습과 이양은 자본력과 더불어 더욱 더 공고화 되어 민중의 삶과 의식까지 지배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건강한 젊음의 문화도 힘을 잃고 대학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획득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면서 자본과 권력의 재생산 구조로 제도화됐다. 대학에 생존에 대한 고민만 있고 존재에 대한 성찰은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대학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온 저항문화, 청년문화를 발견하기 어려워 졌다.
 
시계탑도 사라지고 같이 놀던 문화도 사라지고 이제는 그나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리조차 차를 타고 오는 손님들에게 내 주게 됐다. 대학 정문에 백화점이 있는 대학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광장이 있는 대학을 비교해서 생각 해 보자. 그리고 지금 부산대학은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대학이 학생을 가르치는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먼저 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공간. 꼭 소비를 해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냥 머물 수 있는 공간. 상상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공간. 제한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 차가 지나쳐 버리는 도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광장으로 부산대 정문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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