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들의 조그만 사무 공간을 사이에 두고 총장실과 마주하는 본관 5층의 회의실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지령에 무릎 꿇은 총장에 항의하여 8월 30일에 시작한 교수들의 농성이 아직까지 밤낮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수들이 두 달째 사실상 풍찬노숙하고 있는 이런 미증유의 사태는, 지난해 11월 총장선거 때 총장 직선제를 지켜내겠다고 내건 공약을 학내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사정 변경도 제시하지 못한 채 총장이 독단적으로 파기한 것이 발단이다.
 
총장 직선제에는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짙게 배어 있다. 1953년 전쟁 중에 제정된 교육공무원법은 총장은 전체 교수회의 동의를 얻어 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학장 교수 부교수는 단과대학 교수회의 동의를 얻어 행하는 총장의 제청으로 문교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했다. 식민지 지배와 군정을 겪고 새로 일어선 우리나라가 보편적인 원리인 대학의 자치를 보장한 것이다. 1960년 11월 전체 교수회가 문교부에서 통첩한 두 사람을 놓고 직접선거의 다수결로 문홍주 교수가 총장으로 제청되는 데 동의한 과정을 부산대학교 20년사 등이 기록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다음해 1961년 총칼로 헌정을 뒤엎고 국권을 장악한 박정희 주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교육에 관한 임시 특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총장 등의 임명에서 이와 같은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절차를 제거했다. 이 체제는 1963년 이른바 민정 이양을 계기로 특례법이 폐지된 후에도 교육공무원법에 온전히 이식되어 오랫동안 낙하산 총장을 양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인 총장 임명제는 박정희를 이은 전두환 시대 막바지의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의해 크게 휘청대다가 1991년 마침내 법률에서 사라졌다.
 
이후 국립대학이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여 장관에게 추천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래서 국립대학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교육공무원법의 취지에 맞춰 실은 교수회가 정하는 방식과 절차를 그대로 학칙 등에 담아 교수들의 직접선거로 총장 후보자를 선정해 왔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이런 선정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온갖 사업예산의 배정에서 크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상투적인 평가 수법을 총장들에 들이대며 을렀다.
 
총장이 그동안의 언행을 뒤집어 8월 24일 학칙을 개정해 총장 직선제를 폐기한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이에 대해 교수들이 회의실에서 농성하고 있는 것은, 총장이 장관의 부조리한 회유와 겁박에 굴종해 총장선거 때의 공약을 내팽개치고 올해 6월 투표로 거듭 확인한 교수회의 뜻도 묵살하며, 법률에 따라 민주적이며 자치적으로 관리하던 총장 직선제를 없앴기 때문이다. 이렇듯 총장실 사태는 직선제는 옳은 것이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권력의 횡포 앞에서는 입 다물고 엎드려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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