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길게 만난 것도 아니었고 깊은 마음으로 만난 것도 아니었던 만큼 이별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냥 잠시 내 자리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추억이라는 것이 생겼고, 이별 후의 대부분의 기억들이 그러하듯 그것은 그리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습관적으로 그와 자주 가던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문득 그의 얼굴, 표정, 행동,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즐겁고 행복했는데, 헤어진 이후 필자는 너무 이기적이게도 그의 단점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서로의 밝은 앞날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며 헤어졌는데도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만날 때는 몰랐던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이제는 단점으로 보였고, ‘헤어지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합리화의 근거를 찾고 있었다. 그런 이기적인 방법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 사람이 보고 싶어졌다. 헤어진 연인을 못 잊어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고맙다. 그 사람 덕분에 진정 미안함이 뭔지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미안했다. 떠나간 상대를 마음속에 두고 자기 위로라고 했던 모든 것이 알고 보니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었다. 그 사람의 단점은 곧 내 단점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외면하고 싶고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을 더 욕했던 것이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쓰나미가 무서운 것은 바닷물이 아닌 바닷물에 쓸려오는 물건들 때문입니다. 회오리바람 또한 바람 때문에 죽는 일보다 바람에 쓸려온 물건들에 치여서 다치고 죽습니다. 우리가 괴로운 건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그 상황들에 대해 일으킨 어지러운 상념들 때문입니다’.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난 상념들을 그 사람 탓으로만 하고 있어서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그를 보내주었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한결 편안하고 시원하다. 이제 그의 힘찬 앞날을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고 우연히 그와 마주친다면 더 환하게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느 연인들의 이별과 다를 바 없는 흔한 이별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필자는 조금 더 성숙해진 것을 느꼈다. 책 덕분에 아주 값진 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책이 필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좀 더 사랑하기 위해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나를 위해서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는 주위의 것들을 보지 못한다. 오직 앞에 있는 경쟁자들을 따라잡으려고만 하지 자신의 뒤에 있거나 주위에 있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멈추면 세상은 달라진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었던 사람들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나’를 가장 먼저 보았다. 멈추어 서서 ‘내가 왜 지금 이 달리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행복이 뭔지, 내가 원하고 이루고 싶은 꿈이 뭔지’도 생각해봤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안경을 바꾸고 나면 세상도 달리보이는 법이다. 필자는 멈추어 서서 나만의 ‘안경’을 바꿨고 다시 달리기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달리기는 목표도 방향도 없이 그냥 남들 쫓기에 바쁜 달리기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또 다른 것들에는 나의 꿈과 미래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았고, 잡았다. 멈추어 섰다고, 늦었다고 초조하지는 않다. 나는 멈추어 서서 내 길을 보았고, 이제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달려갈 준비가 돼있다.
  지금 시작하는 이 달리기는 진정한 내 자신과 하는 것이기에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열정을 불 지피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할 것이고, 그렇기에 필자는 미래가 더 궁금하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다가 힘들면 지금처럼 멈춰 서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고 더 힘찬 도약을 위해 준비할 것이다. 나는 지금 출발선에 서 있고, 이제 달리기가 곧 시작한다. 흥분된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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