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중요한 것으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말로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현재와의 관계 속에서 정립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니 “끊임없는(a continuous precess)”이라는 단어가 유독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역사를 논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중요한 장면과 발언들을 살펴보자.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현안은 역시 코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다. 최근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며 본격적인 대선레이스가 시작됐다. 유력 주자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지만 특히 역사관과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각 후보의 역사관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지고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역사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며 ‘통합’을 저해하는 일이라 말한다. 국민들을 통합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이므로 역사논의는 뒤로한 채 정책을 겨루고 앞날을 준비하자고 말한다.
  과연 그 속뜻은 무엇인가. 아마도 통합과 미래를 위해 불편하거나 불리한 과거는 묻어두자는 말로 생각된다. 또한 많은 표를 얻으려면 어느 누구도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만 말하라는 뜻도 담겨있을 것이다. 누구도 비판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욕 먹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진정 역사를 논하는 일은 ‘과거에 연연’하는 것이며 ‘통합의 미래’를 방해하는 행위인가. 이쯤 되면 다시 한 번 카가 말한 역사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역사란 무엇이고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역사는 고정된 진리가 아니다. 내일 당장이라도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새로운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다면 역사교과서는 수정될 수 있으며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고 근거가 명확하다면 또한 우리의 역사를 고쳐 써야한다. 따라서 끊임없이 과거와 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판에서 흔히 논란이 되는 역사는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아직 체 내려지지도 않았다. 이를 논하는 것이 과연 과거에 연연해 통합을 방해하는 일인가.
  우리는 안과 밖으로 많은 역사적 고민을 안고 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사는 독도나 강제징용 문제가 그렇고, 고구려 역사 문제가 그렇다. 특히 일본이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 누구라도 분노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스스로는 어떤가. 우리는 같은 국가 국민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제대로 평가하고 반성하고 있는가. 광복 이후부터 90년대 초까지, 같은 국가의 국민 사이에서 자행된 비인간적 만행들에 대해 누구하나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있는가. 남의 잘못은 냉정하게 비판하되 스스로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성찰해야 한다.
  사서삼경 중 <대학>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구절이 있다. 몸과 마음을 닦고 수양하며 가족을 가지런하게 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닦고 수양하기 전에 한 가지 더 권하고 싶은 덕목이 있다. 바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진정 국민들을 치유하고 통합으로 이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과거 없이는 미래 또한 없다. 미래를 구상하고 현재의 국민들과 소통을 게을리 하지 말며, 또한 과거와의 대화도 멈추지 말자. 우리는 여전히, 역사와 끊임없이 대화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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