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아시모프, <죽은 과거>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SF소설 <죽은 과거>에는 시간탐사기가 등장한다. 타임머신은 아니지만 대신 다른 사람의 과거를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 ‘시간탐사기’ 앞에서는 당신만의 비밀도, 비밀스런 만남도 없다. 1초전의 과거라도 당장 볼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조차 시간탐사기가 알려주는 것이다. ‘시간탐사기’가 개발된 사회, 사생활이 사라진 사회, <죽은 과거>의 사회가 현실에 실현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소설은 한 역사학자가 정부로부터 시간탐사기 사용허가를 거절 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소설 초반부 순수한 연구를 목적으로 젊은 물리학자에게 시간탐사기 개발을 부탁한다. 역사학자는 페르시아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는데, 과거 페르시아 인들의 생활과 삶을 알고 싶어 시간탐사기를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젊은 물리학자는 역사학자의 설득으로 미지의 학문이 되어버린 ‘중성미자학’을 연구하고 마침내 간이 시간탐사기를 발명한다.
 
그리고 시간탐사기를 발명한 순간, ‘죽은 과거’가 되살아난다. 역사학자는 화재로 3살 난 딸을 잃었다. 역사학자와 그의 아내는 딸의 죽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죽은 딸에 집착 증세까지 보인다. 아내는 시간탐사기가 자기 집 지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자, 죽은 딸을 보려한다. 그 순간 역사학자는 깨닫게 된다. 정부가 왜 시간탐사기 개발을 막고 있었는지. 문성원(철학) 교수는 “과거는 원래 불완전한 모습으로 현재에 반영된다”며 “과거가 명확히 현재에 보여지는 순간 지나간 일은 지나가지 않은 일이 돼버린다”고 말했다. 소설처럼 시간탐사기가 개발된다면 사람들은 ‘시간탐사기’를 본래의 목적처럼 순수한 연구를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을까. 아시모프는 정부 요원의 말을 통해 시간탐사기가 사생활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설 속 정부요원은 마지막 말로 “모두에게 사생활이 없는 행복한 어항 속 같은 인생이 되기를”이라는 구절을 남긴다.
 
현재 과학기술로 시간탐사기와 같은 기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범식(물리) 교수는 “중성미자는 소립자 중 하나”라며 “소설에서에 등장하는 중성미자학은 존재하지 않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완전한 시간탐사기가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시간탐사기’가 사람의 과거를 제약 없이 볼 수 있다면, 인터넷은 불완전하게나마 타인이 과거에 남긴 족적을 살펴볼 수 있다. 시간탐사기가 중성미자에 새겨진 정보를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한다면 인터넷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거를 찾아낸다.
 
‘죽은 과거’에서 작가가 우려했던 사생활 침해 역시 나타난다. ‘신상털기’가 바로 그것이다. 김배원(법학) 교수는 “디지털 기록의 경우 쉽게 지워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며 “자신의 정보를 삭제할 권리, ‘잊혀질 권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잊혀질 권리가 침해당해 정보에 대한 통제권한을 잃고 타인이 정보에 마음껏 접근해 자신에 대한 정보와 과거의 치부를 들춰낸다는 것이다. 물론, 죽은 과거에서 역시 개인은 중성미자가 가지는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탐사기에 부정적인 것만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문성원 교수는 “시간탐사기를 통해 미제사건이나 공익을 해치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래 역사학자가 이용하려했던 연구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결국, 모든 기술발전은 사용하는 이에 따라 용도와 효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맞게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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