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전> 속 장량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한 진나라가 망하고, 주인이 없어진 중국 대륙을 차지하고자 유방과 항우가 맞서 싸운 전쟁을 초한전(楚漢戰)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에서 천하를 통일한 유방을 도운 세 인물이 있으니 바로 한신, 소하, 그리고 장량이다. 책사 장량은 한신처럼 용맹무쌍한 장수도 아니었고 소하처럼 행정력이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장량이 후세에도 널리 칭송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 상황을 적절하게 읽고 날카로운 조언을 던져 유방의 ‘멘토’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는 선비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장량의 면모는 초한시대에서 2천여 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진다.
 
장량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일화는 천하통일 후 논공행상과 관련된 이야기다. 유방은 통일에 도움을 준 신하들에게 어떻게 상을 나눠줘야 할 지 정하지 못한 채 1년을 끌고 있었다. 이때 장량이 유방에게 가장 싫어하는 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이에 유방이 옹치(雍齒)라 답하니 그를 최우선적으로 공신에 봉하라고 조언했다. 그 결과 불만을 토로하던 신하들은 “옹치가 오히려 공신이 됐으니 우리들도 걱정할 바가 없다”며 안도했고 유방은 긴 시간을 가지고 논공행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불편하지만 정확한 조언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한 것이다. 김원중(건국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옹치를 공신으로 봉한 일은 사심(私心) 없는 그림자형 조언자인 장량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천하통일 후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에 은둔한 것에서도 장량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사기>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후 유방은 장량에게 유후(留候)라는 작위와 함께 3만 호의 식읍을 상으로 내렸지만 그는 사양했다.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역할인 조력자의 본분을 다 하고나자 자연히 권력을 멀리한 것이다. 리더가 되는 법만을 강조하고 자기 혼자 빛나는 것에만 몰두하는 현대인들과 달리, 한발 물러나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을 빛나게 한 장량의 진면목이 다시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장량은 말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에 은둔하며 정치에 관해 약간의 조언만 해줬을 뿐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함규진(서울교대 윤리) 교수는 “장량에게서는 현실 참여를 통한 개혁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 초탈한 존재이고자 하는 선비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판에는 고질적으로 각종 측근 비리들과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측근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이와 대비되는 장량의 선비적인 면모는 현재의 우리 정치에 큰 귀감이 된다. 장량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그 권력을 마다하고 한 발자국 물러나 생활했기 때문이다. 함규진 교수는 “장량은 훌륭한 전략가였지만 그 지략만으로 후세에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며 “현실을 열심히 살면서도 선비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지킨 것이 그가 장자방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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