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소중한 것을 지켜오던 자물쇠가 이번에는 인간의 특명을 받고 사랑의 보호자로 나섰다. 사랑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사랑의 자물쇠’는 10·20대에게 새로운 사랑의 서약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서울N타워, 부산의 용두산 공원, 양산의 천상 구름다리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추세다.
  사랑에 대한 속설은 많다. 그 중, 최근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속설은 ‘자물쇠에 사랑을 서약하고 그 열쇠를 찾지 못하는 곳에 버리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일 것이다. 이 속설의 근원은 명확하지 않다. 가장 유력한 근원지는 2006년에 출판된 페데리코 모치아의 <난 널 원해>에서다. 이 소설에서 연인은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자물쇠를 밀비오 다리에 걸고 열쇠를 강에 던져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이 소설을 본 사람들이 이를 모방했고 이후 속설처럼 전해져 왔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우리나라에까지 흘러들어와 서울N타워를 가득 채웠다. 서울N타워 마케팅부서 신한잎 씨는 “타워에서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물쇠를 걸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용두산 공원의 자물쇠들도 마찬가지다.
  “자물쇠를 걸면 사랑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글을 보고 나도 하게 됐다”고 말하는 김윤오(중동, 23) 씨. 사람들은 이것이 속설임을 알면서도 ‘사랑’이 지닌 불완전성 때문에 믿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는10·20대에게 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용두산 공원의 매점 관리자는 “주로 고등학생에서 20대 초반이 자물쇠를 많이 사가는 편”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10·2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사랑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꼽았다. 인격적 성숙이 불완전한 10·20대가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면서 인격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 이에 김동규(철학) 강사는 “루만에 따르면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사랑을 제시했다”며 “이 때문에 젊은이들은 사랑에 더 목을 맨다”고 말했다. 이렇기에 10·20대는 사랑의 징표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본래 사랑은 가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감을 상쇄하고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의 표식을 만들어 왔다. 연애컬설팅 업체인 IMF 이준도 대표는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물질적인 것으로서 확인하려는 이성적 욕구가 작용한다”며 “이러한 심리가 자물쇠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지가 사랑의 징표로써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데 최근 반지에서 더 나아가 자물쇠라는 더 적극적이고 폐쇄적인 상징물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떠나는 철학여행>의 김영범 저자는 “본래 자물쇠는 무언가를 가두는 것에 쓰였다. 즉 자물쇠는 ‘속박’의 상징성으로 사용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랑을 속박하려는 심리는 사랑의 속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사랑의 속성은 크게 아가페, 에로스, 루두스, 스트로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루두스적 속성은 모험이나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뜻한다. 반면 스트로게적 속성은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해 온 안정적인 관계를 말한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장근영 연구위원은 “사랑은 루두스적 속성과 스트로게적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안함이 내재해있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영원한 사랑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사랑을 속박하기도 한다. 자물쇠를 영원히 열지 못하도록 찾기 힘든 곳에 열쇠를 버리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김영범 씨는 “영원한 사랑에 관한 갈망은 고대 때부터 이어져왔다”며 “영원히 살지 못하며, 불완전한 모습을 가진 인간이 사랑을 통해 그 불안감을 극복하려는 모습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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