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등장으로 인간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물물교환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도입된 돈은 그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돼 왔고 현재에 와서는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는 참사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돈에 의해 지배당하게 됐을까?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돈’ 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돈을 부정적으로 본 이전의 사회학자들과 달리 그는 돈의 양면성에 특히 주목했다. 돈은 그 자체로 교환 매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러나 돈이 있는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 불필요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돈의 속성이 오히려 사람들 사이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정태석(전북대 사회) 교수는 “돈은 다양한 것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인간에게 자유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자유는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신분제를 해체한다는 면에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돈에 의해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는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 중에 선택할 수 있는, ‘제한된 자유’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양면성은 인터넷의 발달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시공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빅브라더와 같은 존재에 의해 감시당하고 제한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제한된 자유라는 짐멜의 논의와 맞닿아 있다. 
 

한편 돈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돈은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환 수단이었다. 그러나 점차 실물과의 관계를 넘어 화폐 그 자체가 중요한 교환수단이 됐다. 자본이 직접 거래되면서 세계는 단일한 시장을 유지하게 됐다. 또한 돈은 분업을 탄생시켰다. 지주형(경남대 사회) 교수는 “화폐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되면서 산업구조가 더욱 분화됐다”고 설명했다. 분업이 이뤄지기 전, 개인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하지만 분업이 이뤄지면서 개인이 한 상품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타인에 대한 의존성 강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돈이라는 대상에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의미가 인간이 본래 부여했던 의미를 초월해 점차 객관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짐멜은 이런 객관화가 이뤄지면 대상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과정에서 주관문화와 객관문화의 분리와 지배가 이뤄진다.
 

그러나 짐멜은 이러한 개인화 과정이나 객관문화가 주관문화를 지배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는 않았다. 노진철(경북대 사회) 교수는 “짐멜은 객관문화가 주관문화의 우위에 서는 현상을 관찰하기만 했을 뿐 부정적으로 보거나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객관문화가 우위에 서더라도 곧 주관문화가 변증법적 작용으로 ‘합’을 도출해 낼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짐멜은 당대 사회에서 이방인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관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선기(충남대 사회) 교수는 “짐멜의 사회학을 형식 사회학이라고 부를 만큼 그는 현상을 보여주고 드러내 주는 것을 중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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