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큰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다. 교수는 논문 쓰는 기계로 전락했다. 가치 불문하고 한 편이라도 논문을 더 쓰기에 바쁘다. 성과급과 연봉에 도움을 줄 생계형 논문이 제작되는 열정 없는 과정을 연구실 형광등은 내려다보고 있다. 학생은 스펙 쌓기에 올인이다. 도서관을 채우는 열기는 각종 시험과 취업 준비가 뿜어내고 있다. 진리를 탐구하고 국가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 인재를 키우는 대학, 이런 것은 먼 이상향 이야기가 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경쟁지상주의가 대학에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잘못된 정부 정책이 촉진한 측면도 많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 정책에 공기업 평가에 적용할 법한 경쟁 요소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대학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존재이유부터 다르다.
 
원래 대학은 학문 연구와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연구라 함은 가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작업이고, 교육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교육부 압박 아래 대학은 교수 연구 업적을 논문 편수로 평가하고 있다. 교수들 간 학문과 전공 차이조차 무시한 상대평가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로써 교수들을 한 편이라도 논문을 더 쓰도록 몰아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엄연히 교육기관이지만 대학에서 학생 교육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학별 교육성과를 교육부는 취업률을 지표로 평가하고 있다. 이 제도에서는 인재 양성과 학문 후속세대 양성이라는 대학 본연의 교육 목표는 설 자리가 없다. 취업률로 대학들 간에 경쟁을 붙이고 그 결과로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철학과는 철학을 잘 가르쳐야 하고, 수학과는 수학을 잘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전공 교육 우수성이라는 기준은 온데간데없다. 오로지 취업률로 학과와 대학을 평가한다. 취업에 기여하지 않는 학문과 학과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전제가 교육부 대학 정책에 깔려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으로 전락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장기적인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을 해결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대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기초 교육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 사회는 어떤 속성을 갖는가, 세계는 어떤 질서 속에 움직이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길러준다. 직업적인 전문 지식도 인문학 기초 위에 구축되어야 그 효용성이 제대로 발현된다. 초일류 IT 기업인 구글과 애플사가 인문학 전공자를 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애플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다”라고 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층적 이해 없이는 첨단 기술도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진정한 일류 대학으로 가는 길은 개량적인 평가 지표를 버리고 기본에 충실한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에서 우리 대학부터 체제 혁신을 시도하는 용감한 모습을 보이길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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