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내레이션 중.
 
영화의 주인공인 선우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달콤한 꿈, 즉 이상세계는 현실에서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슬프지만 또한 더욱 달콤하다.
 
인간은 항상 일상 속에서 이상세계를 꿈꾸지만 그 이상은 어린 제자의 꿈처럼 현실 속에서 좌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간이 꿈꾸는 이상은 단순한 허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 의의를 갖는다. 이상 세계는 인간이 현실의 시련과 부조리를 겪으며 그것을 바꿔나가고자 만들어낸 하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현실의 모순에서 탈피하고자 이상 세계를 꿈꿔왔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철학자 공자와 플라톤 역시 자신들만의 이상세계,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공자가 살았던 시기는 하-은-주로 이어진 천자 중심의 봉건 질서가 무너진 춘추시대였다. 공자는 “천하에 올바른 길이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에게서 나오며, 천하에 올바른 길이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며 당시 무너진 신분 질서를 비판했다. 이런 현실에서 공자는 이상적인 국가형태로 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의 주나라를 상정하고 나름의 이상적인 국가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조남욱(윤리교육) 교수는 “공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성과 존엄성을 강조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나라는 그 이름만 실재했을 뿐, 예악(禮樂)과 같은 구체적 정치 형태는 공자에 의해 창조된 측면이 강하다. 또한 하은주 시대를 기록한 역사서도 공자 자신이 쓴 <춘추>가 최초였다. 이는 주나라에 공자의 이상이 투영됐음을 반증한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소피스트들은 상대적 진리를 중시하여 고대 그리스의 기본 정치 체제인 폴리스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에 대항하여 플라톤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로서 진리를 바라보는 이데아론을 제시했다. 송문현(역사교육) 교수는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한 후 현실 정치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며 “그 결과가 <국가>와 같은 대작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철학적인 이상세계, 즉 이데아 세계의 건설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의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렇듯 공자와 플라톤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보완하여 제시한 이상세계는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와도 일맥상통한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라는 뜻의 <유토피아>는 에덴동산과 같은 천국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영국 사회, 나아가서는 당시 서양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은 책이었다. 토마스 모어는 당시의 영국 사회의 형벌, 계급 제도, 종교를 유토피아와 하나하나 대조하며 비판했고,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가상의 국가를 통해 제시했다. 그 결과 <유토피아>는 계몽사상을 이끌어 프랑스 혁명 등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점점 그곳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며 인간 세계는 발전한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지만 역설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조남욱 교수는 “공자의 철학 자체에 집착하기보단 현실에서 어떻게 철학을 적용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토피아 자체보다 유토피아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실패를 겪지만 이상 세계를 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속 선우가 죽어가며 미소를 지은 이유도 그토록 갈망하던 인생의 달콤함을 위해 온 힘을 다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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