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휴머니스트 박훈 변호사

▲ <부러진 화살> 실제 주인공 박훈 변호사
  누적관객 수 300만 명을 훌쩍 넘긴 화제의 영화 <부러진 화살> 속 박준 변호사의 실제 주인공 박훈 변호사를 만났다. 박훈 변호사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센터에서 9년 동안 상근 변호사로 일하다가 2008년부터 창원시에 개인 사무소를 차렸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변호사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 낮은 자세로 인권 옹호에 힘써야 하는 고된 직업”이라고 말했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박훈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떠한 20대를 보냈나?
  20대는 나의 정신적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20대 때 완성됐다. 나의 학창시절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5년부터 87년까지였다. 그때는 학생운동이 정점에 올라있을 때였는데 특히 87년도는 학생이 사회민주화를 이끄는 주동세력일 정도였다. 나는 학과 수업은 아예 팽개쳐버리고 사회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과 당시했던 생각들이 지금껏 변치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금 20대와는 다르게 정치, 사회, 사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특히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활동들을 참 열심히 했다. 그때 나는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현실의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꼈고 사상적 방황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지금의 노동에 대한 관심 또한 20대 때 완성된 것이다. 지금이야 마르크스나 레닌의 책이 자유롭게 출간되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그런 책은 출간은커녕 읽는 일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지고 이어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들 이후로 마르크스, 레닌 책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런 책들이 혹시나 없어질까 싶어서 출간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구입해 읽고 공부했다. 당시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매일 취업 걱정으로 인해 토익, 토플, 어학연수 등 소위 말하는 스펙 쌓는 일에 전념하지만 우리 때는 그런 것보다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행복한 시기였다.

▲ 박훈 변호사의 노동에 대한 관심은 20대 때부터 시작됐다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변호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먹고 살기 위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학업보다 사상적 활동에 더 몰두했기 때문에 평균평점이 4.5점 만점에 2.5점일 정도로 학점은 좋지 않았다. 지금이었으면 아예 취업의 문도 못 두드릴 점수다. 그래도 당시엔 취업경쟁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당시엔 3.0점이 일종의 취업전선 기준 점수로 여겨졌는데 나의 점수는 거기에도 미치지 못해 갈 수 있는 회사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동양매직이라는 회사에 운 좋게 취업을 하게 돼 27살 때부터 5년 동안 대리점을 관리하는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30살 정도가 되면 주택청약부금을 내야 하는데 이는 곧 일반적인 사회생활로 진입할 것인지를 결정할 나이가 됐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당시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친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되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학생운동 때 했던 생각들이나 당시 가졌던 사상 등을 포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1살 때 직장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을 공부해 2년 만에 합격했다. 이후 지금껏 변호사로 살아왔다.

노동자 권리를 대변하고 경찰폭력 규탄운동을 벌이는 등 활동범위가 굉장히 넓다. 어디에서  원동력을 얻었나?
  분노다, 분노! 요즘 젊은이들은 분노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알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면 행동을 해야 한다. 행동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는 자기 내적으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성찰의 원동력을 인간에 대한 분노라고 본다. 휴머니즘의 핵심명제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그에 따른 분노로 이뤄진다. 나의 철학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그 인간들에 대한 어떠한 탄압과 폭압이 오면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본다.
  젊은 시절에 분노가 없는 것은 젊은이가 아니다. 이 명제는 아직도 옳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여, 분노하라. 젊은이들이여, 행동하라.

변호사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

▲ 석궁사건 항소심 제3차 공판 속기록 자료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하나를 꼽자면 2001년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다. 1,750명을 일거에 정리해고 시켜버린 그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대우자동차 사측은 먼저 4,000명 정도를 명예퇴직 시키고 난 후에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무려 1,750명을. 그런데 명예퇴직한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그 기업체에 사내 하청기업으로,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월급은 당연히 반 토막 난 채로 말이다. 그것은 곧 정리해고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임금을 조금 깎으려는 추잡한 수작일 뿐이다. 나는 그것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사측의 정리해고와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려고 경찰병력을 주둔시키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반발했다. 곧장 법원에 가서 노동조합 활동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했고 이후 승소를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사측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출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극악무도한 폭력행위다. 당시 싸워서 100명 가까이 부상당하기도 했는데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는 참 많이 기억에 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은 가진 것이 없다. 힘겹게 번 돈으로 마련한 집 한 채, 자동차 한 대 정도가 그들 재산의 전부다. 집이나 차를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해고라는 것은 정말 살인행위와 다름없다.
  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정말 많다. 2004년 이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파업활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됐다. 당시 파업 사업장 중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같이 잠자고 생활했다. 그들의 삶을 함께 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이른바 ‘석궁테러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 감상평이 궁금하다.
  영화에 나오는 법정 안 장면은 전부 공판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법정 밖 장면도 대부분 실제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론 알코올중독자라든가 여자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적 설정이다.
  나는 이 사건이 김명호 교수가 판사 집으로 석궁을 들고 찾아간 행동이 중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석궁을 들고 찾아간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처벌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고위법관은 맞지도 않은 화살에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사법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 측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정당한 증거, 증인을 신청하면 그냥 기각해버렸다. 결국 고위법관의 횡설수설한 말만을 믿고 김명호 교수에게 4년형이라는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내게 치가 떨리는 분노를 안겨다줬다.
  나는 평생을 두고서라도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재미있으면서도 분노를 일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준 정지영 감독님과 영화를 사랑해준 정의로운 국민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박훈 변호사는 석궁사건이 사법사상 초유사태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부대신문 인물면 공통 질문이다. 당신의 20대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는?
  화염병, 쇠파이프…. 막걸리! 막걸리. 참 술을 많이 마셨다. 지금 내가 20살짜리 대학생들을 보면 굉장히 앳되게 보이는데 그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조직하고 막걸리 마셨다. 막걸리는 울분을 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동료 간의 끈끈한 연대감을 만들어줬다. 또 막걸리를 마시면 그 핑계를 대고서라도 객기를 부릴 수 있었다.
  나는 20대 때 술자리에서 연애, 연예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전두환 정권의 3S정책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늘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는 세계정세, 동북아의 정세 등 지금의 20대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큰 주제들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는 장은 토론의 장이기도 했고 객기를 부리는 장이기도 했고 조직하는 장이기도 했고 이별하고 또 만나는 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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