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큰누나가 하드커버로 된 5권짜리 <플루다크 영웅전>을 사 주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어려워서 노트에 적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잠자리에 누우면 필립1세가 전장을 휘젓고 다녔고 입이 툭 튀어 나온 알렉산더의 중얼거림이 내 귀에 들리곤 했다. ‘아빠가 땅을 다 정복하면 내가 취할 땅이 없을텐데’. 중학교 시절 삼국지를 읽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가 시험기간이었다. 시험공부 대신 삼국지를 끼고 있다가 평균점수 1점 하락에 한 대씩 8대를 맞은 볼이 아직도 얼얼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밑자리를 깐 지도 벌써 한 해가 더 되었다.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의 좌표를 바꿀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늘 책을 가까이 두고 살았기에 순간순간 감동을 받았을지는 몰라도 인생까지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이 내가 있으니까 이 말에도 모순이 있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얻기를 원했다.

 
  지식이 완전히 내 것이 되면 그것이 바로 지혜인 것 같다. 세상을 살다보면, 특히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늘 빛을 발하곤 했다. 내가 결혼 후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에서 늘 같이 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The Calendar of Wisdom>. 사랑하는 아내가 이렇게 살았으면 하고 선물한 책이다. 너무 두꺼운 책이라서 첫 장을 넘길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다행히 하루에 읽을 분량이 정해진 책이었다. 읽기만 하기엔 너무 허전한 생각이 들어서 지난 3년 전부터는 하루분량을 타이핑하며 하루를 연다. 나는 이 책에서 참 많은 것들을 얻는다. 

 
   그 중에 하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잔잔한 마음의 아침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그 만큼의 하루가 길어진다. 하루의 삶이 늘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생기면 좋겠지만 어디 그런 인생이 있겠는가? 힘들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때 눈을 감고 아침에 읽은 글을 묵상하거나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위안을 얻고 또 평상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8월 13일의 일곱 번째 글을 같이 한 번 읽어보자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배 안에서 그 배 안의 물체를 바라볼 경우, 우리는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배 밖의,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것, 이를테면 해안을 바라보면, 우리는 바로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나, 단 한 사람이 깨달아 신의 계명에 따라 살기 시작하면 즉시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고,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 사람을 박해한다.”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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