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산자락 사이로 뽀얀 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이다. 미리내 계곡도 짙은 녹음 속에서 아직은 깨어나지 않았다. 바로 이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진다. 세상과 덜 만난 청신한 자연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시 응모작을 대하는 순간, 우리는 흥분하였다. 작년 보다 배나 되는 작품이 응모되었고, 그 안에서 풋풋하면서도 약동하는 젊음을 마주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흥분은 이내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젊음이 표현한 마음이 다양하지 못한데다 사고 역시 그다지 깊지 않았던 탓이다.
  올해에는 모두 42편이 투고되었다. 작품의 제재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개인의 갈등이나 남녀 간 사랑 등 내면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었다. 사회나 역사에 대한 시선이 보이지 않았음도 특이했다. 그렇다고 내면의 응시가 도저한 수준에 미친 것도 아니었다. 수면에 일렁이는 감각과 자극에 주목하고 있었다. 극히 제한된 작품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젊음은 나 이외의 남에 대한 공감에 인색하였고, 나를 벗어난 남을 시야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한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두 편을 가작으로 추려서 세상에 전한다. <두 번의 겨울이 남긴 이야기>가 영화적 씬(장면)으로 서사를 꾀하면서 파편화된 삶을 보이고, 그 안의 연속성을 읽고자 한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장면 #2의 정류장 사이의 공백을 통해 두 마음 사이의 거리를 보이고, #4에서 ‘생활’이 그대로 ‘슬픔’이 된다는 설정은 참신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장면은 주로 진술에 의지하여 긴장도가 떨어졌다. 함축적이지 않은 진술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유로(流露)일 뿐이기 때문이다.
  <슬픈 소묘>는 ‘버스’라는 삶의 과정 속에서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세상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자아(‘거울’)의 참혹한 상황을 ‘낙태’로 비유하고 있다. 단순하지 않은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되 모호한 표현으로 젊음이 지닌 좌절과 무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였다. 그러나 모호함에 기댄 실험적 태도가 끝내 냉소적 자위로 마무리되고 말아 좀 더 깊은 사유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냉소는 타락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시적 주체의 추진력이 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 가작 이외에 소품적 소묘였던 <향기> <비내미>, 실험작인 <바기나덴타타와 오딧세우스> 등은 내면의 아픔과 진심이 야트막하여 선정되지 않았다. 시가 마음을 담지 못하면 사물(死物)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응모한 이들, 선정된 이들 모두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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