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학생 성폭행을 다룬 영화 <도가니>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한 인화학원의 폐교와 해당 사건의 재수사, 사회복지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런 노력으로 현재 인화학교는 폐교됐고 장애인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인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 일명 ‘도가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러한 현상에 전문가들은 ‘영화가 저널리즘의 일부분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점쳤다. “영화 <도가니>가 장애학생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고,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이 수행하는 역할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시사IN> 고재열 기자. 서대정(예술문화영상) 교수 역시 “최근 기득권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사람들을 직접 움직이게 만들었다”며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화 <도가니>가 대안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셈”이라고 전했다.
  특히 도가니 사건은 신문이나 시사 프로그램보다 영화로 제작됐을 때 여론 형성에 파급력이 커져 영화도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영화 <도가니>는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의 기능, 여론을 형성하는 저널리즘의 순기능이 잘 혼합돼 영화가 저널리즘을 수행한 최초 사례로 탄생했다.
  그러나 영화가 저널리즘의 모든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과거에도 사회고발성 영화가 존재했지만 여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현실을 바꾸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김이석 대표는 “영화라는 매체가 재구성된 픽션이기 때문에 여론 형성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사회문제를 접근하는 방식도 문제다. 임영호(신문방송) 교수는 “언론은 사회문제를 구조적,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영화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분노, 눈물 등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호소한다”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영화는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는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영화의 상업적인 요소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김이석 대표는 “대부분 상업 영화가 만들어질 때 사회를 고발하는 목적보다 흥행 여부에 따라 영화 제작이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영화가 저널리즘을 수행할 가능성은 높다. 서대정 교수는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영화의 중요 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개봉될 사회고발성 영화에 대해 이왕주 교수는 “사회고발성 영화가 단지 상업적인 이유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며 “영화의 시·청각적인 부분을 살려 묻혀있던 사회문제를 알려 여론을 형성하고 움직이게 하는 선순환적인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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