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은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기에 알맞은 시간인가. 1년은 무력과 허무를 깨닫기에 적절한 시간인가. 전자는 서울대 법인화 추진에 대한 물음이고, 후자는 이 사태를 마주한 서울대 학생들의 변화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답변과는 상관없이 2012년 서울대는 정부 소속기관에서 국립대법인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한 해의 끄트머리로 달려가는 길목에서 간절히 묻는다. 지난 1년은 국립서울대학교에 어떤 시간이었나.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87년 국립대법인화의 개념이 등장한 뒤 오랜기간 국립대사이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서울대 본부는 2008년 독단적으로 법인화위원회를 발족했다. 본부에게 기초학문 고사나 대학의 시장화 등 우려점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얻을 수 없자 학내 구성원들은 난색을 표했다. 79.28%(6,757표)로 압도적인 학생들의 반대 의견에도 법인화의 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1년 전이었다. 12월 8일, 한동안 심사조차 없었던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돼 갑작스럽게 통과됐다. 찬반여부는 차치해두고서는 문제는 그 정부법안은 대학의 자율성, 민주적 의사소통, 재정 기반 확충 등 본래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졸속통과된 법안이 짓밟은 절차적 정당성이었다. 그 뒤 본부는 귀를 막은 채 쫓기듯 법인설립을 진행했다. 국립대가 가져야할 교육 공공성이, 학문의 전당이 지켜야할 정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피켓의 구호가 돼 허공에 울렸다.
 
1년은 학교를 법인으로 전환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겠지만, 그 바퀴를 거꾸로 돌리기엔 더욱 빠듯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2011년은 숨가빴다. 비판 자보와 규탄대회, 국립서울대의 장례식 등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열기는 5월 30일, 2천여명이 한데 모인 학생비상총회로 이어졌다. 단과대와 과반의 깃발이 축제처럼 나부꼈고, 그날 학생들은 법인설립준비위원회를 해체하기로 총의를 모았다. 그날 밤 1천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은 답변하지 않는 본부를 점거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말처럼 ‘경륜’없이, ‘반지성’적으로 학문의 전당을 유린했을까. 알 수 없지만 학생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로웠다. 집기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자보를 붙였다. 만화나 광고를 패러디한 풍자그림부터 개사한 노래 가사까지 다양했다. 매일 자유발언과 문화제가 열렸고 학생들은 공강 시간마다 본부에서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한 켠엔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여기저기에서 보낸 간식들이 쌓여갔다. SNUV의 총장실 프리덤은 학내에 회자됐고 점거노래자랑과 본부스탁 등의 행사는 이 활기로운 한 때의 여흥이 됐다.

“법인화법 폐기나 전면 재검토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런 상황을 고민하기엔 너무 바빴을까. 한 해 동안 본부의 대답은 언제나 한 가지였고, 반복된 답변을 들을 때마다 학생사회는 조금씩 지쳐갔다. 본부는 학생과의 대화보다는 징계가 먼저였고, 참여가 점점 사그러지자 곧 점거를 해제한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 내부의 의견도 분분했다. 향후 행보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 대다수의 선택은 일단 침묵이었다. 누군가는 정문 위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며 법인화법 반대와 동맹휴업 성사를 기원했지만, 200여 명의 학생만이 선포식에 참여한 채 9월의 동맹휴업은 뼈아픈 실패로 남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무거운 고요였다.

요즘도 서울대는 위태로워 보인다. 학생사회도, 교수사회도 법인화의 물결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아예 눈을 감아버리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누군가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다른 누군가는 법인화법의 세칙인 정관을 고민할 것이다. 서울대가 보낸 1년은 그들만의 1년은 아니었으리라. 대학이 정치화?시장화된다는 점에서 여러 국립대들의 구조조정은 근본적으로 법인화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난감한 상황까지 우리는 같은 한 해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남은 1년을 위해 어떤 답을 말할 것인가. 그것이 침묵만 아니라면 나와 당신은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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