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어두워지자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이윽고 허리가 구부정한 여인이 걸어 나온다. “보소, 아들 아부지요, 잘난 아들 앞세워서 본마누라 내쫒는 짓은 아무리 좋게 봐도 천벌 받은 일인기라”며 여인은 설움을 쏟아낸다. 가부장적인 사회 아래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은 아랫목을 둘째 부인에게 빼앗기고, 결국엔 여자 쌍둥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소박맞는다. 여인은 보란 듯이 두 딸을 키워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에 올라가지만 차가운 현실은 여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내 팔자가 이렇지”라며 눈물을 훔치는 여인. 그런 어머니를 가엽게 여기는 두 딸. ‘어머니 날 낳으시고’는 어머니부터 쌍둥이 딸까지 여러 명의 여성이 등장해 각자의 삶을 그려낸다. 그러나 배우는 단 한 명. 배우 변현주는 표정 하나 말투 하나로 순식간에 딸 영란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연극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정말 전형적인 우리 어머니에요”라고 운을 떼는 현주 씨. “‘남편복도 없는 년이 자식복도 없다’고 하는 대사는 저희 어머니도 자주 하시던 말씀이죠”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서 극을 끌어간 현주 씨는 “어머니 스스로가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극중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물론 둘째 부인에게 밀려나는 것도 자기의 팔자려니 여긴다. 이에 현주 씨는 “어머니가 가부장적인 사회아래 익숙해져 버린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면 ‘누구 엄마’, ‘어디 댁’으로 불리며 어느새 이름은 잊혀지고 만다. 가정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시 된다. 이에 변 씨는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어머니라고 한다면 언제나 헌신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워요. 어머니를 ‘주체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봐야 해요”라고 덧붙인다.


  오늘 날 현주 씨를 무대에 있게 한 것은 대학시절 영어연극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연극의 매력에 빠진 그는 부모님과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96년에 극단 새벽에 입단했다. “욕심을 줄이면 연극하며 살아가는 데 문제없어요”라는 동료 천영숙 씨의 말처럼 연극인에게는 일상의 사소한 것이라도 포기해야할 것이 많다. 변 씨는 그 어려움을 알기에 후배들에게 연극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거라고 항상 말한다. 현주 씨가 14년간 연극에 몸담을 수 있었던 것은 연극에 대한 욕망이 다른 욕망들보다 컸기 때문이다. “내 돈으로 옷을 사 입은 적이 18년 전이에요. 이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다른 것들을 끊고 모든 목표를 무대에 뒀어요”라며 가치관을 밝힌다.


  요즘 현주 씨는 연출 공부에 열심이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싶어요”라며 의지를 밝히는 현주 씨. 나아가 “관객들이 배우 변현주를 통해 현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춘다. 배우 생활을 하며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나기도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하는 이 길을 떠날 수 없다는 배우 변현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배우는 오늘도 무대를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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