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여타 과학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가치중립적이지만 진화론의 주장이 창조신앙과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과학계와 종교계는 갈등을 빚었다. 오랜 시간 지속된 갈등을 넘어서 조화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고자 하는 주장들이 있다. 칼 같이 날을 세우던 양측이 입장을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창조론의 입장에서 과학을 수용한 이론 중 하나가 ‘오랜 지구 창조론’이다. 이 이론은 신이 6일 만에 세상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약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해 긴 시간에 걸쳐 개개의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오랜 지구 창조론’을 창조론과 진화론이 조화를 이뤄내려는 노력으로 보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신의 창조가 점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을 뿐 진화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치열한 논쟁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양측의 주장을 합했다고 할 수 있는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생명의 진화를 인정하지만 진화의 전체 과정을 이끈 원동력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이 중시하는 바는 진화론의 주장과 성서의 일치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진화라는 개념이 기존의 신학에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유신론적 진화론을 설명한 논문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청소년 교리교육의 적용> 저자인 범어성당 백승열 신부는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지탱하는 두 축이기 때문에 상호협력을 도모해야 한다”며 “그러한 의미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적 사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논문 <창조 대 진화 연구> 저자 임원규(목원대 신학대학원 박사1) 씨 역시 “유신론적 진화론이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모두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이론이지만 창조가 반드시 진화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진화론 발표 이후 불편한 기색을 내비춰 왔던 교황청도 두 이론의 조화에 우호적인 반응이다. 지난 1996년 교황청은 진화론을 단순한 가설 이상으로 받아들인다고 공표했다. 인간의 ‘육체’가 그 이전의 생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해도 그 영혼은 신이 창조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2009년에는 교황청이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다윈의 진화론과 교회 신앙이 양립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과학은 형이하학인데 비해 종교는 형이상학이기 때문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다른 영역으로 보되 양측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점점 더 항생제에 내성을 가져 슈퍼박테리아라는 신종 박테리아가 출현한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옳지만 창조론은 윤리와 철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정칠(경희대 생물) 교수는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는 과학이 그 한계를 넘어 형이상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도출하고자 하는 태도와 창조과학이 얕은 지식으로 신을 찬양하기 때문”이라며 “두 학설 지지자 모두에게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한 김흡영(강남대 신학) 교수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 아닌 ‘과학적 자연관’과 ‘신학적 자연관’의 대립으로 봐야 한다”며 “서로를 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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