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가 급성 대동맥 해리로 사망했다. 미우라 켄타로는 큼직한 세계관과 이를 표현하는 압도적인 작화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다. 취향 차를 떠나 <베르세르크>가 많은 이들 사이에서 대작이자 명작으로 회자되어 온 까닭은 결과물 자체가 증명해 온 바 있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문자 그대로 ‘몸과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어 왔다’고밖에 할 수 없다.

미우라 켄타로는 그런 점에서는 과연 일본식 출판 만화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인물이었고, 그 결과로 작품이 늦게 나온대도 일단 나오기만 하면 읽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릴 만한 결과물을 보여줘 온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럼 뭐하나?저렇게 고통스럽게 급사하고 말았는데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이 죽음을 영혼을 다 태운 끝에 사그라든 명인의 숨-같은 식으로 칭송할 수가 없다. 그런 상찬보다는 <베르세르크> 다음 권을 서점에서 집어 드는 게 더 좋았을 테니까 말이다.

미우라 켄타로의 소식을 듣고 종일 멍한 가운데, 정말 애통하게 돌아가셨거나 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게 된 작가들이 뇌리를 스윽 지나쳐 갔다. 한둘도 아닌지라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다. 심지어 그 연배들이 그렇게 높지도 않다. 이번에 죽은 미우라 켄타로는 50대고, 90대에 죽은 <게게게의 기타로> 미즈키 시게루가 주창한 ‘수면력’과 같이 언급되는 ‘잠 안 자서 일찍 죽은’ 대표 작가 둘이었던 <철완 아톰>의 데즈카 오사무와 <사이보그009>의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각기 60대에 들어서자마자 죽었다. 그런데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다 60대쯤 죽은 건 감히 ‘그나마’란 말을 붙일 법하다. 30~40대의 죽음은 정말 너무 이르다. 2002년 대한민국 출판문화대상 신인상을 받았던 <취중진담>에 이어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미스터 레인보우>의 송채성 작가는 폐부종으로 2004년 3월 13일 세상을 느닷없이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서른 살이었다. 많은 이들이 비통해했고, 비록 4회 정도까지만 진행되었지만 가족의 뜻에 따라 작가가 고료를 모아 남겼던 비용을 바탕으로 <송채성 만화상>이라는 상이 제정되어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에 쓰인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따스한 필치는 다양성에 관한 화두가 부각되는 지금 이 시점에 등장했거나 완결된 형태로 회자되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할 터다.

이쯤 되면 안타까운 만화가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글을 끝내야 할 듯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와는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계속해서 전이와 재발을 반복하며 오랜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헬무트>,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의 권교정 작가는 어떤가. 오랜 시간 장대한 서사와 세계관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온 이 작가는 현재 반려동물들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젠 숫제 개인 홈페이지에 짤막한 소식이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그 와중에 무언가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병이 병이고 재발 소식도 계속해서 들었던지라 어디선가 이름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화들짝 놀랄 정도다. 

무릇 만화를 비롯해 창작 작업 전반이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그야말로 통설이고 많은 작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는 글·그림 복합의 결과물인 만화는 육체와 정신의 소모도가 심한 편인데,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상업 지면에서 연재를 해야 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소모를 한층 더 부추김 받는 경향이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서 안 보일 뿐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할 웹툰 작가들 가운데에도 연재하며 몸이 축난 경우는 많고, 많은 경우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 또한 몸이 소모되는 데 비해 대가가 그에 비례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례하는 것은 독자들의 들볶기인 경우가 많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웹툰 덧글란을 보라. 결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아래 달리는 덧글은 “짧다!”, “태업이다!” 같은 경우가 태반이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창작 환경이 나아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또한 다음 편을 독촉할 수조차 없다. 모두들 건강하게, 덜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기를. 시간은 좀 더 써도 괜찮으니 말이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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