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 온라인 강좌 사이트에 등록된 웹툰 강좌의 광고가 SNS에 유료 집행된 적이 있다. 이 광고의 제목은 “웹툰, 어차피 독자는 말풍선만 읽습니다”. 심지어 광고 내용은 “그림 못 그려도 대박 날 수 있어!- 취미로 시작하는 웹툰 첫걸음”이었다. 광고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다소 선정적으로 ‘오버’를 해야 하는 속성이 있음을 고려해도, 해당 광고가 가리키고 있는 지점들 하나하나가 업계 사람으로서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 이전이나 이후는 물론 근래까지도 이런 종류의 홍보 문구나 주장이 곧잘 회자되었고, 그때마다 “그림이 아닌 내용으로 승부한 만화가”들이 부각되곤 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방점은 그들이 거둔 ‘대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만화에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들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하다 하다 “어차피 독자는 말풍선만 읽습니다”라는 문구까지 튀어나왔다는 점 때문에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뭔가 턱 하니 얹힌 듯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다. 한데 웹툰 댓글란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응 대부분이 “짧다”, “이렇게 분량이 적다니 작가가 태업한다”, “이렇게 금방 회차를 끝내놓고 큰돈을 받느냐”, 식이고 보면 명색이 웹툰 제작 강좌의 제목에 붙은 이 말을 그냥 넘길 수만도 없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창작자가 세상에 내어놓고자 하는 ‘이야기’의 연속된 흐름 또는 맥락을 칸으로 대표되는 틀 영역 안팎에 영상적 연출을 가한 그림과 각종 시각 기호를 동원해 배치·압축함으로써 표현해내는 문화예술이다. 만화 창작자는 칸으로 대표되는 영역을 정하고 그 안에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설계한 상을 배치하고 다음 칸으로 이어 나감으로써(때론 그 모든 걸 한 칸 안에 압축함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 크기를 표현한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바 자체에 작가 스스로가 충실하다면 독자들은 일정 이상 진입장벽을 견뎌내고‘설득’된다. 분명 세간에는 차마 그림을‘잘’그린다고는 할 수 없을 일련의 작가군들이 있지만, 그들의 만화에 독자들은 설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작가들에게 상업적 성과를 안겼다. 대중의 너른 선택을 받아 상업적으로 성공한 만화가들은 대체로 이와 같은 만화 구성요소 간의 유기적 결합으로 자기 나름대로 설득력을 만들어낸 이들이다.

다시 말해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건 그림을 못 그린 만화가들이 거둔 성공의 전제 조건이 아니거니와, 반대로 “못 그려도 이야기만 좋으면”도 오롯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만화는 이야기와 그림이 영상 언어적인 배치를 통해 유기적인 결합을 이뤄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 둘 중 어느 한쪽을 충분조건으로 놓아선 안 된다. 물론 역설적인 사례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약자 혐오 정서를 자극해 일군의 설득력을 쟁취하는 기안84의 만화는 단순히 ‘그림이 안 좋은데 이야기가 좋아서’ 호응을 얻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쪽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일반론의 견지로 보자면 만화에서 이야기와 그림 어느 한 쪽의 균형이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그 불균형이 몰입도를 되레 방해한다. 웹툰에서 작화의 밀도가 읽는 시간에 반비례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건 이미지를 선이 아닌 면 자체로 인식하게 되는 모니터 환경의 특징에 기인하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림의 밀도가 주는 시각적 쾌감 또한 만화를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이상 독자의 시선을 매체적 한계에도 이야기 안에서 얼마나 오래 붙들어 맬 수 있게 할 것인가가 밀도와 함께 결부되는 연출에서의 승부수다. 만화의 이야기는 이렇듯 지문만이 아니라 영상적인 설계에 이르는 모든 안배와 배치까지가 포함되는 개념이다. ‘만화 스토리 작가(만화 글 작가)’라는 직업군에게 작화 직전에 준비되는 연출의 설계도라 할 콘티를 작성하는 능력이 거의 기본으로 요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하니, “어차피 독자는 말풍선만 읽는다”라면서 웹툰 제작 강좌를 내놓는 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가?비단 해당 광고만이 아니라, 이렇듯 만화에 얽힌 일련의 편견을 교육 업체만이 아닌 업계 등지에서 계속해서 강화해 나가는 건 결과적으로 즐길 거리로서의 만화 매체를 지극히 얄팍한 수준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만화 창작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괴롭힐 것이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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