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급증해 왔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5년에는 다문화 가정이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해 우리나라가 ‘다민족 국가’에 등재될 정도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눈길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이런 눈초리에 맞서 매주 일요일 혜화동 성당 앞에서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지난 달 6일, 두터운 외투를 입은 필리핀 상인들은 매서운 강추위에도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15개의 노점으로 이루어진 이 곳의 간판대 위의 빤씻, 룸피아 등 필리핀의 음식들과 필리핀산 로션 등 다양한 생필품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시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북적거렸다.

이 벼룩시장은 1995년, 혜화동 성당에 필리핀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면서 시작됐다. 대부분 필리핀 사람들의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에 경기도 일대의 필리핀 사람들이 혜화동 성당에 몰리면서 벼룩시장도 자연스레 생성‧번창했다. 음식을 사던 아르젠(구로동, 24) 씨는 “이곳에 오면 고향을 느낄 수 있어 자주 찾는다”며 즐겁게 얘기했다. 이희찬 필리핀 소세지제조업 사장은 “사고파는 시장의 개념보다 필리핀 사람들 간의 정보 공유의 장이자 고향이라 말할 수 있다”고 벼룩시장의 중요성을 말했다.

오랜 시간 이들에게 마음이 위안이 됐던 벼룩시장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도로변에서 노점을 하는 이들의 상행위는 불법이라는 점 때문이다. 현재 종로구청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벼룩시장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한비(韓比)상인연합회 박일선 회장은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벼룩시장의 자율적인 축소와 노점관리, 주변 도로 청소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청 사람들의 언행에 더 노심초사한다. 감독을 하는 동안 구청 사람들은 시종일관 반말을 하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박일선 회장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라는 약자로 이루어진 벼룩시장 사람들을 무시하는 말과 태도가 있다”며 “그래도 우리가 약자니까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물가 상승은 그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소세지 가게를 하는 마리안 이는“대체로 경기가 좋지 않아 예전보다 장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혜화동 벼룩시장과 같은 시장이 부산역 매트로 뱅크 앞에서도 열린다. 그러나 상인 두 명이 트럭에서 장사하는 게 전부여서 벼룩시장이라고 불리기 어렵다. 서울보다 시장의 규모가 작은 이유는 크게 부산의 도시화와 보수적 성향 때문이다. 필리핀 정보지 NEWSGATE 서종득 대표는 “최근 다문화 가정의 생성은 여성 비율이 적은 농촌의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도시화된 부산은 이런 국제결혼은 적은 편이고 타 지역에 비해 보수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 대표는 “반감이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은 많이 부족하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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